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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리 잃고 촉각으로만 소통..세상 밖 나오고픈 헬렌켈러들(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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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04-19 15:46 조회4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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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청각장애 손창환씨 통해 본 현실

시청각장애인인 손창환씨(오른쪽)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에서 열린 헬렌켈러센터 개소식에서 촉수화(만져서 이해하는 수화)로 통역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어려서부터 말도 듣지도 못해 30대에 시각 잃고 가족과 이별 촉수화·촉점화 배워 단절 극복 헬렌켈러법 사각지대 한국 ‘소수자 중의 소수자’ 힘든 삶

손창환씨(49)는 어려서부터 듣지 못하고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눈에도 이상이 있어 남들과 달리 비좁은 시야로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손씨는 그래도 행복했다고 했다. 마뜩지 않은 시야였지만 분명히 ‘빛’은 보였고,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워 결혼도 하고 아이를 봤기 때문이다. 20대의 그에게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손씨가 서른살이 된 뒤 그 희미하던 빛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눈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며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시각까지 잃자 그는 일을 할 수 없었고 운영하던 빵가게도 접어야 했다. 가정도 흔들렸다. 부인과는 다툼이 잦아지면서 결국 헤어졌고, 아들은 멀리 떨어진 동생집에 맡겨야 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그를 지탱해준 가족도 찾기 힘들어졌다. 그야말로 ‘완전한 고독’이 찾아온 것이다.

손씨는 그렇게 긴 시간 집 안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나올 힘을 얻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찾게 되면서였다. 손씨처럼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이들은 ‘시청각장애인’이라 불렸고,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도 일부 마련돼 있었다. 손을 만지는 수화로 소통하는 ‘촉수화’나 손가락으로 서로의 손등에 점자를 찍어 대화하는 ‘촉점화’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딛고 일어서는 그들의 모습에 손씨는 용기를 얻었고, 마흔의 나이에 안마 기술을 배우며 자립을 시작했다.

손씨는 최근 자신이 참여하는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 ‘손끝세’(손끝으로 여는 세상)를 대표해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16일 만난 손씨는 자신에게 남은 꿈 하나는 시청각장애인들의 협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혼자 지내던 시절에는 한국에 시청각장애인이 나 혼자밖에 없는 줄 알았다”며 “지금도 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이 소통을 못하는 상태로 집에 갇혀 있을 것이다. 전국에 숨어 있는 농맹인분들을 하나하나 찾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손씨의 바람대로 시청각장애인들을 찾기에는 국내 여건이 너무나 미비하다. 미국의 경우 시청각장애인이던 ‘헬렌켈러’의 이름을 딴 지원법이 있고 실태조사도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에선 시청각장애가 장애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고 별도의 실태조사도 없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 원자료를 근거로 추정했을 때, 전국에 1만명 이상의 시청각장애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다. 시청각장애인은 전체 장애인 인구 중에서도 소수라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도 쉽지 않다. ‘소수자들 중의 소수자’라 할 수 있다.

현재 지역사회의 시청각장애인들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의료나 복지, 교육 등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장애인 실태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분석한 결과, 시청각장애인 중 절반을 넘는 50.9%가 최근 2년 내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도 32.7%에 달했다. 매일 외출할 수 있다는 이들은 10명 중 3명 정도에 불과하다.

■“수어통역사 더 양성해야…시청각장애인 자조단체 지원 필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외출은 부러운 행사에 속한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밖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실제 기자가 이날 손씨와 함께 거리에 나가보니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거의 없어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호등만 봐도 시각장애인은 신호등의 소리를 들어 파악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은 눈으로 붉은빛과 초록빛을 구분할 수 있지만,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시청각장애인은 건너갈지 판단할 수 없었다.

손씨의 통역을 맡은 고경희 한국수어통역사협회(KASLI) 부회장은 “미국은 횡단보도에 진동시스템을 마련해 시청각장애인들을 돕고 있는데, 한국은 장애인시설 근처에서도 이런 인프라를 찾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를 통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장애인들을 돕는 활동지원인력들이 촉수화나 촉점화 등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한 의사소통 방법을 익힌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의사소통 자체가 안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촉수화나 촉점화를 이해하면서 시청각장애인의 일상생활이나 보행을 도울 수 있는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소통’과 인간관계에 목마른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모임을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시청각 중복장애인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전체 장애인이 모이는 모임에서는 소외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시청각장애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자조모임이 일부 있지만 모임을 위한 장소, 교통비, 통역비 등 예산 부담으로 지속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김종인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장은 “시청각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끼리 서로 자주 모이고 옹호해줄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원하는 자조단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기기의 보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일부 시청각장애인들은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며 인간관계 부족에 따른 아쉬움을 메우고 있다. 손씨도 “중고 단말기를 구한 뒤 사람이 그리워 새벽 2시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점자정보단말기는 가격이 비싸고 보급 대수도 매우 적어 시청각장애인들이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장애인개발원 측은 “소통이 절실한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점자정보단말기는 매우 효과적인 보조기구이므로 이들에게 더 보급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청각장애인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곳들

-시청각장애인지원센터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070-8708-9651 / ymhong@miral.org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 ‘손끝세’ 02-736-0735 / kdbm161025@naver.com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 ‘손잡다’ holdhands0408@gmail.com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헬렌켈러법’ 서명 캠페인 사이트 : helen.miral.org』

취재지원 : 밀알복지재단

 

*출처 : 경향신문(2019. 4. 19./박용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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