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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고독하게…가족도 사회도 버린 사람들[이슈&탐사](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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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06-12 11:35 조회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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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고독하게…가족도 사회도 버린 사람들[이슈&탐사]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⑥숨어 있는 데프블라인드

입력 : 2020-06-10 10:34/수정 : 2020-06-1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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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남. 39세. 잔존 시력과 잔존 청력 없음. 수급자. 무연고자. 의사소통은 손짓, 몸짓으로 함.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바지를 내림. 1991년부터 거주 시설에 있음.’ (경기도 시청각장애인 지원체계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 중) 

신씨는 국민일보 취재팀이 만난 ‘데프블라인드’(Deaf-Blind) 26명 명단에 없는 사람이다. 취재팀은 지난달 경기도 여주 시각중복장애인 복지시설인 라파엘의집을 찾아 시청각장애인 4명을 만났다. 보름쯤 뒤 라파엘의집이 공개하지 않은 시청각장애인이 6명 더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신씨는 그중 한 명이다. 이곳 관계자는 “6명은 장애 정도가 심각해 방 안에만 있다시피 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자해나 발작 같은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회의 정책용역으로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이 조사한 신씨의 기록에는 ‘조산으로 시청각장애가 발생했다’고 쓰여 있다. 그는 1981년 즈음 태어나 얼마 동안은 집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1991년부터 시설에 있었다니 열 살 전후 부모가 양육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개되지 않은 6명 중 또 다른 1명인 강모(40)씨도 ‘전맹, 전농, 수급자, 무연고자’다. 장애 원인과 시기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도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기록에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움’이라고 적혀 있다. 

시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취재팀은 이들 중 상당수가 의사소통 교육의 적절한 시기를 놓친 뒤 시설이나 집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 유형의 장애인이 모인 시설에서 이들을 별도로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초적인 의식주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이 전부다. 이들은 바깥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짐승처럼 살다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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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중증장애인 시설 은혜로운집에 거주하던 정모(49)씨는 3개월 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20대 초반부터 시설에서 살아온 그는 생전 시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귀에 바짝 대고 말을 해야 알아들을 정도로 청각도 좋지 않았다. 정신질환이 함께 있어 울고 떼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시청각장애인 자조 단체는 물론 관련 기관도 그의 존재를 몰랐다. 

서울 한 중증장애인시설에 거주하는 김모(38)씨는 그가 살던 세상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경우다. 김씨는 어릴 때 청력을 잃었지만 대전에서 농학교를 다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노숙 생활을 하다가 경찰관에게 발견돼 시설에 들어갔다. 시설에서 병을 앓으면서 시력을 잃게 됐다고 한다. 그가 거주하는 자치구의 지역신문 2017년 기사에 따르면 김씨는 청각에 이어 시력까지 잃자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았다. 다행히 도예를 배우면서 성격이 밝아졌다. 

김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농맹인선교회 ‘손끝세’(손끝으로 전하는 세상) 모임에 참여했다. 그를 알아보는 농학교 친구들이 있었지만 김씨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수어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인들은 그가 사는 시설에 수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 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취재팀은 그를 만나려 했으나 시설 측은 “의사소통이 전혀 안 돼 어렵다”고 말했다.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장(나사렛대 교수)은 “국내 장애인 시설들은 사회에서 버려진 장애인을 거두고 관리하기에만 급급하고 교육 프로그램이나 인력은 전혀 없다”며 “이러한 시혜적인 접근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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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지역의 여성 A씨는 의사소통 교육에 실패하고 집에만 있다. 농학교에서 그를 받아주지 않아 겨우 발달장애 학교에 들어갔지만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는 A씨에게 밥만 먹이고 앉혀 놓기만 했다고 한다. A씨의 어머니는 성인이 된 뒤에도 시각장애인복지관과 활동지원사를 통해 점자와 수어를 가르치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제주도 농아복지관이 실태조사로 발굴한 시청각장애인 문모(80)씨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남편에게 뺨을 맞아 청력이 손상된 문씨는 나이가 들면서 백내장으로 시력마저 감퇴했다. 남편과는 20년 전 사별했고 자녀 6명과는 떨어져 홀로 산다. 노인정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장애가 생긴 뒤에는 거동이 힘들어 교류가 뜸해졌다. 

서울에서 홀로 사는 B씨는 같은 청각장애인 남성과 결혼했다가 자신에게 시각장애가 겹치면서 가정불화가 심해져 이혼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이 있지만 소통이 안 돼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 B씨의 지인은 “자식을 만나고 싶냐고 물어보면 ‘아니야, 몰라’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B씨는 한글을 잘 모르고 수어도 초등학생 수준이어서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고 있다. 

시청각장애인 자조단체 ‘손잡다’는 숨어 있는 데프블라인드를 찾아내 사회로 끌어내는 일을 한다. 조원석 손잡다 대표는 “시청각장애가 생기면 당사자나 가족은 충격에 외부와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당신의 편이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진심으로 설득해야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673938&code=61121111&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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